엔비디아의 해자를 층으로 나눠 보면 프레임워크는 이미 갈라졌고, 라이브러리와 시스템 두 층이 남습니다. 그중 시스템 층 — 그러니까 GPU와 GPU를 잇는 선 — 이 지금 표준 싸움의 한복판이에요.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하나 있습니다. 경쟁이 두 군데서 따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랙 안 연결과 랙 밖 연결이 서로 다른 층이라는 구조 개념 컷 랙 안 연결과 랙 밖 연결이 서로 다른 층이라는 구조 개념 컷 — 출처: Anthropic 공식 발표 수치 기반 자가 생성

CUDA 해자는 어디가 뚫렸나 — 층별로 뜯어보기

두 전선을 가르는 게 먼저입니다

AI 인터커넥트 표준이 발표된 순서 AI 인터커넥트 표준이 발표된 순서 — 출처: 각 컨소시엄·NVIDIA 공식 발표 기반 자가 렌더

랙 하나 안에서 가속기들을 촘촘히 묶는 걸 스케일업, 랙과 랙을 이어 클러스터를 만드는 걸 스케일아웃이라고 합니다. 두 자리에서 각각 다른 도전자가 서 있어요.

구분 스케일업 (랙 안) 스케일아웃 (랙 밖)
지금 강자 NVLink InfiniBand · RoCE
도전 표준 UALink Ultra Ethernet
성격 전용 규격 대 개방 표준 이미 있는 이더넷의 개량

이 둘을 한 덩어리로 묶어 엔비디아 대항마 라고 부르면 판이 안 보입니다. 스케일아웃 쪽은 원래도 표준 장비를 골라 쓸 수 있었고, 진짜로 잠겨 있던 건 스케일업이거든요.

랙 안 — UALink가 던진 숫자

NVLink와 UALink 1.0의 최대 연결 가속기 수 비교 NVLink와 UALink 1.0의 최대 연결 가속기 수 비교 — 출처: UALink Consortium·NVIDIA 사양 기반 자가 렌더

UALink 컨소시엄은 2025년 4월 1.0 최종 스펙을 냈습니다. 레인당 200GT/s에 한 도메인에 최대 1,024개 가속기를 묶을 수 있다고 규정했어요. NVLink의 최대치가 576개니 규모만 놓고 보면 앞섭니다.

다만 이 우위는 레인 하나가 빨라서 나온 게 아니라 레인 수와 토폴로지에서 나옵니다. 실제 대역폭은 별개예요. AMD가 올해 1월 CES에서 밝힌 MI455X는 72장짜리 Helios 랙에서 가속기당 약 3.6TB/s의 스케일업 대역폭을 낸다고 했는데, NVLink 5.0의 GPU당 1.8TB/s와 견주면 이쪽이 높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스펙은 두 번 나왔는데, 그 스펙으로 만든 칩은 아직 없습니다

컨소시엄은 2026년 4월 2.0 스펙을 발표했습니다. DL과 PL 규격을 분리하고 네트워크 안에서 연산을 처리하는 In-Network Compute, 관리 규격과 칩렛 규격을 더했어요. 그런데 정작 1.0 실리콘은 2026년 말에야 나옵니다. AMD·인텔·아스테라랩스가 준비 중이고요.

스펙이 실물보다 두 걸음 앞서 있는 상태입니다. 표준 진영이 흔히 겪는 자리인데, 그동안 상대는 이미 파는 물건으로 점유율을 쌓습니다.

랙 밖 — 이더넷이 밀고 들어옵니다

랙과 랙을 잇는 이더넷 패브릭 개념 컷 랙과 랙을 잇는 이더넷 패브릭 개념 컷 — 출처: Anthropic 공식 발표 수치 기반 자가 생성

바깥쪽 싸움은 결이 다릅니다. Ultra Ethernet Consortium은 2025년 6월 11일 1.0 스펙을 냈고, 9월에 1.0.1로 손봤습니다. 리눅스재단 산하에서 굴러가는 개방 규격이에요.

무엇을 규정하느냐가 핵심입니다. NIC와 스위치, 광모듈, 케이블까지 한 벌로 묶어 여러 벤더 장비를 섞어 쓸 수 있게 했어요. 그 위에 이더넷·IP용으로 다시 짠 RDMA를 얹었습니다. RDMA는 CPU를 거치지 않고 메모리끼리 직접 데이터를 옮기는 방식인데, 인피니밴드가 강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였습니다.

방향은 이미 기울어 보입니다. 인피니밴드의 주인인 엔비디아조차 이더넷 기반 Spectrum-X로 무게를 옮겼고, Blackwell 세대에서는 Spectrum-X가 Quantum 인피니밴드보다 더 팔린다고 알려졌어요.

엔비디아의 응수 — 패브릭을 반쯤 엽니다

NVIDIA 로고 NVIDIA 로고 — 출처: NVIDIA

닫아걸기만 한 게 아닙니다. 엔비디아는 2025년 5월 NVLink Fusion을 내놨어요. 남의 칩을 자기 패브릭에 붙일 수 있게 여는 겁니다.

  • 미디어텍·마벨·알칩·아스테라랩스·시놉시스·케이던스가 초기 채택사로 붙었습니다
  • 후지쯔와 퀄컴의 CPU를 엔비디아 GPU와 묶는 구성도 가능해졌습니다
  • 커스텀 실리콘은 UCIe 인터페이스로 연결하고, 엔비디아가 브리지 칩렛을 제공합니다
  • 올해 엔비디아는 마벨에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를 직접 투자하며 이 생태계를 넓혔습니다

읽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개방 표준이 아직 실리콘을 못 낸 사이에, 엔비디아가 개방의 편익 일부를 자기 규격 안에서 미리 제공해 버린 거예요. 커스텀 칩을 만들고 싶은 하이퍼스케일러 입장에선 표준 실리콘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줄어듭니다.

한국 NPU는 어느 쪽에 서게 되나

리벨쿼드가 발표한 H200 대비 성능 배수 리벨쿼드가 발표한 H200 대비 성능 배수 — 출처: 리벨리온 발표 수치 기반 자가 렌더

국산 AI 반도체 두 곳은 추론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리벨리온의 REBEL은 삼성 파운드리 4나노 공정으로 만들고 HBM3E 144GB에 4.8TB/s 대역폭을 답니다. 넉 장을 묶은 리벨쿼드는 엔비디아 H200 대비 연산 처리량 1.2배, 전력 효율 2.4배라고 회사가 밝혔어요. SK텔레콤 공급도 확정됐습니다. 퓨리오사AI의 RNGD는 TSMC 5나노 공정에 180W라는 낮은 전력 프로파일이 특징이고, LG 엑사원 3.5 실증에서 GPU 대비 전력당 성능 2.25배가 나왔습니다.

다만 두 회사가 칩과 칩을 어떤 규격으로 잇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추론은 학습보다 스케일업 의존도가 낮아 당장은 급하지 않은 선택이긴 해요. 모델 하나를 수십 장에 쪼개 올리는 건 주로 학습 쪽 일이니까요.

그래도 이 선택은 언젠가 해야 합니다. 자체 규격을 만들면 생태계를 혼자 짊어져야 하고, UALink에 붙으면 실리콘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이더넷으로 가면 스케일업 성능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셋 다 공짜가 아니에요.

앞으로 볼 것

  • 2026년 말 UALink 1.0 실리콘이 실제로 나오는지, 그리고 첫 상용 랙이 언제 뜨는지
  • NVLink Fusion 파트너가 더 느는지 — 늘수록 표준 진영의 명분이 줄어듭니다
  • Ultra Ethernet 상호운용 검증이 얼마나 빨리 붙는지
  • 국산 NPU가 스케일업 규격을 공개하는 시점

해자 이야기를 층으로 나눠 보면, 프레임워크는 소프트웨어라 갈라지기 쉬웠고 시스템 층은 물리 규격이라 더딥니다. 케이블과 스위치는 컴파일하듯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층의 승부는 발표가 아니라 실리콘이 나오는 날짜로 판가름 납니다.

참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