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탄에서 본 변압기 납기 160주가 실제로 어디에 걸리는지, 올해 숫자로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잡은 데이터센터 용량이 약 16GW인데, 지금 실제로 공사가 돌아가는 건 약 5GW입니다. 나머지 11GW는 발표만 된 채 삽을 뜨지 않았어요.

AI 의 전기 (5) — 변압기 하나 받는 데 3년, 그 줄 뒤에 선 한국

발표된 물량과 실제 착공 사이의 간극 개념 컷 발표된 물량과 실제 착공 사이의 간극 개념 컷 — 출처: 개념 컷 · agy 자가 생성

16GW 중 5GW — 이 숫자가 도는 경로

발표 용량과 실제 착공 용량 발표 용량과 실제 착공 용량 — 출처: Currence·업계 집계 인용 보도 기반 자가 렌더

에너지 분석사 Currence 는 2026년 가동 예정 대형 데이터센터 용량의 30~50%가 밀릴 것으로 봤습니다. TD Cowen 집계는 미국 계획 용량의 약 45%가 지연 또는 취소라고 정리했고요.

근거는 단순합니다. 통상 데이터센터 공사가 12~18개월 걸리는데, 2026년 안에 가동하겠다면서 아직 착공조차 안 된 물량이 11GW라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안 맞습니다.

2025년 실적도 같은 방향입니다. 그해 예상 용량의 4분의 1 이상이 완공 목표를 놓쳤고, 다른 10%는 상업운전일을 조용히 뒤로 미뤘습니다.

밀리는 이유는 5탄에서 본 것과 겹칩니다.

  • 초고압 변압기 리드타임이 3~5년인데 미국은 자국 생산이 약 20% 뿐입니다
  • 숙련 건설 인력이 모자랍니다 — 돈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공정이 안 나갑니다
  • 지역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주민 반발이 붙었습니다. 지역사회 반대로 막히거나 밀린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약 90조원(640억 달러) 규모인데, 2024년 대비 3배가 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결론이 하나로 모입니다. 데이터센터가 안 지어지면 그 안에 들어갈 서버도 안 사고, 서버를 안 사면 HBM과 서버용 D램 수요가 뒤로 밀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 숫자는 반대로 갔습니다.

물량은 밀리는데 D램 값은 올랐습니다

2026년 2분기 D램 가격 상승률 2026년 2분기 D램 가격 상승률 — 출처: 시장조사기관 집계 및 각 사 실적 보도 종합 기반 자가 렌더

2026년 2분기 범용 D램 계약 가격은 전 분기 대비 58~63% 올랐습니다. 삼성전자의 평균 공급가가 1분기 대비 40% 이상, SK하이닉스가 30% 안팎 뛰었고요.

점유율도 같이 움직였습니다.

업체 2분기 점유율 비고
삼성전자 39% 1위 탈환
SK하이닉스 26% 매출 전년비 +214%
마이크론 25%대 1%p 차 추격

수요가 밀렸다면 나올 수 없는 그림입니다. 착공이 3분의 1도 안 됐는데 그 안에 들어갈 부품 값이 분기 만에 60% 가까이 오른 거예요.

둘 중 하나는 틀렸다는 뜻입니다.

취소된 물량은 원래 아무것도 안 샀습니다

발표만 된 물량의 성격 개념 컷 발표만 된 물량의 성격 개념 컷 — 출처: 개념 컷 · agy 자가 생성

반도체 분석사 SemiAnalysis 가 이 통계를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요지는 분모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는 위성 이미지 수십만 장으로 학습시킨 자체 모델로 미국 데이터센터 부지를 직접 판독합니다. 그 결과 상위 두 개 하이퍼스케일러만 합쳐도 건설 중 용량이 5GW를 넘었어요. 여기에 자체 건설이 아닌 제3자 개발사 물량 수 GW가 원 집계에서 빠져 있었고요.

전망 자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6개월간 2026년 말 기준 북미 하이퍼스케일러 자체 건설 전망은 약 1% 움직였고, 코로케이션은 5% 미만이었습니다.

지연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SemiAnalysis는 밀리는 사례를 세 갈래로 갈랐습니다.

유형 사례 실제 성격
신규 진입자 과대 공시 Energy Abundance 위성에 진전 없음
낙관적 일정 Nebius New Jersey 지연이지 취소 아님
인허가·설비 지연 Oracle·STACK 뉴멕시코 2027 상반기 → 2029

첫째 유형이 통계를 부풀립니다. Energy Abundance 는 5GW 규모 Data City 캠퍼스를 발표하고 2026년에 300MW를 올리겠다고 했는데, 회사 웹사이트에는 연락처 버튼 말고 실질적인 내용이 거의 없고 위성 이미지에도 물리적 진전이 잡히지 않습니다.

둘째는 진짜로 짓고 있지만 일정이 낙관적이었던 경우예요. Nebius 의 뉴저지 사이트는 4개월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가 10~11개월이 걸렸습니다. 밀린 건 맞지만 취소는 아닙니다.

셋째가 실제 병목입니다. Oracle 과 STACK 이 뉴멕시코에서 추진하는 Project Jupiter 는 가동 목표가 2027년 상반기에서 2029년으로 밀렸습니다. 가스 마이크로그리드 허가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신규 가스 파이프라인도 필요한데, 뉴멕시코 환경청이 2025년 12월 신청서를 불완전 처리하면서 공개 청문이 2026년 7월로 넘어갔거든요. 가스 터빈 리드타임은 그것대로 몇 년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취소되는 물량은 대부분 부지 확보·전력 계약·인허가·설비 발주를 아직 하나도 하지 않은 발표 단계입니다. 서버도 메모리도 주문한 적이 없으니 취소돼도 메모리 수요에서 뺄 것이 없어요.

발표를 취소한 것과 주문을 취소한 것은 다른 사건입니다

대기열의 87%가 데이터센터입니다

ERCOT 접속 요청과 텍사스 최대수요 ERCOT 접속 요청과 텍사스 최대수요 — 출처: ERCOT 집계 기반 자가 렌더

허상 물량의 규모를 보여 주는 자리가 텍사스입니다. 2026년 3월 말 기준 ERCOT 의 대형 부하 접속 요청은 410GW 인데, 텍사스 여름 최대수요가 85~90GW예요. 실제로 쓰는 전기의 네 배 넘는 요청이 줄을 서 있는 겁니다.

그중 87%가 데이터센터입니다. SemiAnalysis는 이 가운데 311GW 가량을 실체 없는 수요로 봤습니다. 접속 요청은 여러 곳에 중복으로 넣을 수 있고 넣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제도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텍사스는 2025년 6월 상원 법안 6호(SB6) 를 통과시켜 75MW 이상 대형 부하에 공시·수요조절 의무를 걸고, 접속 신청에 부지 통제 서류와 최소 연구비 납부를 요구했습니다. 돈과 서류를 요구하자 투기성 신청이 줄었어요.

올해 8월에는 한 단계 더 갔습니다. 8월 3일 애벗 주지사가 공익사업위원회와 ERCOT에 대기열의 모든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감사하라고 지시했고, 감사가 끝날 때까지 신규 승인을 멈추게 했습니다. ERCOT은 8월 7일 예정이던 대형 부하 분류 통보를 중단했고요.

접속 대기열 숫자가 앞으로 크게 줄어들 텐데, 그건 수요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애초에 없던 수요가 걸러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국내는 같은 장면을 먼저 겪고 있습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 공급불가 판정 비율 수도권 데이터센터 공급불가 판정 비율 — 출처: 한국전력 기술검토 집계 기반 자가 렌더

한국도 신청과 실제가 벌어지는 구조는 같습니다. 국내 데이터센터 계약전력 신청량은 2020년 이전 60MW 수준에서 2023년 3,091MW 로 3년 만에 50배 넘게 늘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몰리느냐예요. 2024년 8월부터 2026년 3월까지 데이터센터 1차 기술검토 신청 736건 중 522건(71%)이 수도권이었고, 그 수도권 신청 가운데 279건(53.4%)이 공급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절반 넘게 전기를 못 준다는 답이 돌아온 겁니다.

받아 줄 설비도 늦습니다. 주요 송전선로 31곳 중 26곳의 건설이 지연되고 있고, 그 탓에 동해안에서 최대 7GW, 서해안에서 최대 3.2GW가 생산되고도 계통에 못 실립니다.

수요 전망은 계속 올라갑니다.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2025년 4.5GW에서 2028년 6.2GW로 연평균 11%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요.

5탄 마지막에 적었던 우려가 이미 숫자로 나와 있는 셈입니다. 해외 호황과 국내 계통 지연이 벌어지면 국내 데이터센터가 같은 줄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줄이 수도권에서는 이미 절반을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사실인가

두 가지를 같이 놓아야 합니다.

  • 밀리는 건 사실입니다. 변압기·가스터빈 리드타임과 인허가는 실제로 프로젝트를 2년씩 뒤로 보내고 있고, Oracle 사례처럼 대형 프로젝트도 예외가 아닙니다
  • 다만 밀리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다릅니다. 착공해서 장비를 발주한 물량은 대체로 일정을 지키고 있고, 사라지는 쪽은 애초에 주문이 없던 발표분입니다

메모리 값이 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미 짓고 있는 5GW가 사는 물량은 그대로인데, 공급은 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상태가 계속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 해외 증권가 일부는 장기 계약 구조를 근거로 이미 고점 시각을 내놓고 있습니다.

앞으로 볼 것

  • 텍사스 감사 결과 — 410GW 중 실제로 몇 GW가 남는지가 나오면 다른 지역 대기열을 읽는 기준이 생깁니다
  • 착공 용량 자체의 증감 — 발표 숫자가 아니라 착공 GW가 꺾이면 그때는 수요가 실제로 준 겁니다
  • 서버용 D램·HBM 계약 물량 — 가격이 아니라 물량이 먼저 신호를 냅니다
  • 국내 수도권 공급불가 비율 — 이 숫자가 안 내려가면 국내 증설은 지방과 자가발전 쪽으로 갈립니다

발표된 190GW를 그대로 믿는 것도, 절반이 취소됐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것도 같은 실수입니다. 둘 다 착공 여부를 안 보고 발표문만 센 숫자거든요. 지금 봐야 할 건 삽을 뜬 곳이 몇 곳이냐는 것 하나입니다.

참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