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에서 훑은 설비 확보 기간 중에 변압기가 2~3년 한 줄로 끼어 있었습니다. 그 한 줄이 지금 미국 데이터센터 일정을 실제로 무너뜨리고 있어요.

올해 미국에서 가동 예정이던 데이터센터의 40%가 일정이 밀릴 전망입니다. 칩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기를 받아 쓸 물건이 없어서요.

전력 공급 사슬에서 변압기가 병목이 되는 구조 개념 컷 전력 공급 사슬에서 변압기가 병목이 되는 구조 개념 컷 — 출처: Anthropic 공식 발표 수치 기반 자가 생성

AI 의 전기 (4) — SMR 은 정말 답인가, 비용·폐기물·일정을 숫자로

2년 반을 기다려야 변압기가 옵니다

초고압 변압기와 고압 차단기의 납기가 늘어난 추이 초고압 변압기와 고압 차단기의 납기가 늘어난 추이 — 출처: Financial Times·Wood Mackenzie 집계 기반 자가 렌더

Financial Times와 우드맥킨지 집계를 비즈니스포스트가 정리한 수치를 보면, 초고압 변압기 납기는 2024년 평균 143주에서 2026년 1분기 160주로 늘었습니다. 3년을 넘긴 거예요. 고압 차단기도 2023년 77주에서 2025년 말 125주가 됐고요.

특정 회사 사정이 아닙니다. GE와 이튼 같은 주요 업체의 표준 전력용 변압기도 평균 128주, 발전소용 승압 변압기는 144주를 넘습니다. 사양이 까다로운 특수 주문은 4년 이상 기다려야 해요.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수요가 갑자기 튀어서 생긴 일시적 대기줄이 아니라, 공급 쪽이 구조적으로 안 늘어나는 문제예요.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늘립니다

변압기 철심 소재와 권선 공정이 병목이 되는 구조 개념 컷 변압기 철심 소재와 권선 공정이 병목이 되는 구조 개념 컷 — 출처: Anthropic 공식 발표 수치 기반 자가 생성

공장을 지으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업계가 내놓는 답은 셋입니다.

첫째는 소재입니다. 변압기 철심에는 방향성 전기강판(GOES, Grain-Oriented Electrical Steel)이 들어갑니다. 결정 방향을 압연 방향과 나란히 정렬시키는 특수 공정이라 상업 규모로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제철사가 전 세계에 몇 곳 없어요. 미국에서 이걸 만드는 회사는 클리블랜드-클리프스 한 곳뿐입니다. 한국도 사정이 비슷해서 포스코가 유일한 생산사예요. 변압기 공장을 두 배로 지어도 철심이 두 배로 오지 않습니다.

둘째는 사람입니다. 대형 변압기는 코일을 감는 권선 공정에 수작업 비중이 큽니다. 라인을 사서 꽂으면 되는 물건이 아니라, 숙련공을 길러야 생산량이 오릅니다.

셋째는 교체 수요입니다. 새로 짓는 데이터센터만 변압기를 찾는 게 아니에요. 미국 송전망의 약 70%가 설치된 지 25년을 넘겼고, 변압기 상당수가 설계 수명 30~40년을 이미 지났습니다. 신규와 교체가 같은 줄에 서 있는 셈입니다.

병목은 공장 수가 아니라 철심과 숙련공에 걸려 있습니다

그 줄 뒤에 한국이 서 있습니다

한국의 초고압 변압기 대미 수출액 추이 한국의 초고압 변압기 대미 수출액 추이 — 출처: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기반 자가 렌더

미국이 자국에서 못 늘리는 만큼, 그 주문은 밖으로 나갑니다. 관세청 통계를 블로터가 정리한 수치를 보면 한국의 초고압 변압기 대미 수출액은 2023년 2억 5,797만 달러(약 3,612억 원)에서 2024년 4억 345만 달러(약 5,648억 원), 2025년 7억 5,000만 달러(약 1조 500억 원)로 뛰었습니다. 2년 만에 세 배예요.

올해는 1조 5,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납기가 경쟁력이 되는 국면이라 그렇습니다. 사양과 가격이 비슷하면 먼저 갖다 주는 쪽이 이기는데, 한국 업체들은 기존 라인을 돌리면서 증설을 병행해 왔어요. 안산에 2공장을 증설 중인 산일전기처럼 중견사까지 같은 흐름에 올라타 있습니다.

수주잔고 36조가 뜻하는 것

전력기기 3사 합산 수주잔고 변화 전력기기 3사 합산 수주잔고 변화 — 출처: 각 사 실적 발표 집계 기반 자가 렌더

수출액보다 더 눈여겨볼 숫자는 수주잔고입니다. 계약은 됐는데 아직 매출로 안 잡힌 일감이라, 앞으로 몇 년치가 채워졌는지를 보여주거든요.

회사 2025년 3분기 2026년 2분기
효성중공업 13조 8,537억 17조 5,000억
HD현대일렉트릭 9조 5,667억 12조 1,585억
LS일렉트릭 3조 9,308억 합산에 포함
3사 합산 27조 3,512억 36조 6,585억

효성중공업의 수주잔고는 1년 만에 63% 늘었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북미 비중이 특히 높아서, 1분기 기준 전체 수주잔고 78억 8,800만 달러 중 북미가 54억 5,600만 달러로 약 70%를 차지했어요. 올해 수주 목표도 42억 2,200만 달러에서 51억 8,500만 달러로 22.8% 올려 잡았습니다.

잔고가 어떻게 쌓이는지는 7월 초 이틀 사이에 나온 계약 둘이 잘 보여줍니다.

  • HD현대일렉트릭 — 북미 빅테크 데이터센터용 배전기기 5,539억 원과 전력기기 5,673억 원, 계약 한도 합계 1조 1,212억 원. 발주처와 세부 납품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 효성중공업 — 호주 빅토리아주 송전망 운영사 오스넷과 3,100억 원 규모 초고압 변압기·리액터 장기 공급계약. 앞으로 5년간 빅토리아주 송전망에 독점 공급합니다

3사의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7,298억 원이었습니다. 다만 이건 호황의 크기를 보여주는 숫자이지, 이 국면이 얼마나 갈지를 말해 주지는 않아요. 잔고가 3~4년 치라는 건 그 안에 미국이 자국 생산을 세우면 그다음은 다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호황은 데이터센터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효성 계약이 호주 송전망이듯 노후 계통 교체와 재생에너지 접속이 같이 얹혀 있어요. AI 수요가 꺾여도 나머지 두 축은 남는다는 뜻인데, 반대로 셋 중 어느 하나가 밀리면 잔고 소화 속도도 같이 밀립니다.

정작 우리 전력망은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2025년 글로벌·미국·중국 전력망 투자액 2025년 글로벌·미국·중국 전력망 투자액 — 출처: 대한경제 보도 수치 기반 자가 렌더

여기가 이 글에서 제일 껄끄러운 대목입니다. 미국에 변압기를 파는 동안, 국내 전력망 투자는 속도를 못 내고 있어요.

2025년 글로벌 전력망 투자는 4,830억 달러(약 676조 원)로 1년 새 17% 늘었습니다. 미국이 1,150억 달러(약 161조 원, 9.5% 증가), 중국이 960억 달러(약 134조 원, 15% 증가)로 끌었고요. 한국은 한국전력의 누적 재무 악화 탓에 투자 여력이 빠듯합니다. 계통 접속 지연이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의 가장 큰 병목이라는 지적도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발전 허가를 받고도 송·변전 설비가 안 따라와 전기를 못 흘려보내는 겁니다.

다음 판은 직류입니다

그래서 국내 업계가 잡은 다음 수는 교류가 아니라 직류예요. LS일렉트릭은 7월 2일 충남 천안에 세계 최초의 100% 직류 배전 공장인 DC팩토리를 준공했습니다. 반도체 변압기(SST)와 반도체 차단기(SSCB), ESS를 자사 제품으로 채운 시설인데, 공장 전체 에너지 효율이 10% 넘게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직류가 논점이 되는 이유는 데이터센터 때문입니다. 서버도 배터리도 태양광도 원래 직류로 동작하는데, 지금은 교류로 바꿨다가 다시 직류로 되돌리면서 손실이 납니다. 그 변환 단계를 줄이자는 게 DC 배전이에요.

한국전력·한국에너지공대·LS일렉트릭·LS전선·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G전자는 직류 기술 특화 연구단지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 경쟁사끼리 같은 문서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지금 파는 물건이 아니라 다음에 팔 물건을 같이 정의하려는 쪽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볼 것

  • 미국의 자국 생산 — 클리블랜드-클리프스의 전기강판 증설과 GE·이튼의 라인 확장 속도. 이게 붙으면 납기가 꺾이고 한국 업체의 협상력도 같이 꺾입니다
  • 관세와 현지 생산 요구 — 수출로 받을지 현지에 짓고 받을지가 마진을 가릅니다
  • 수주잔고의 질 — 잔고 규모보다 계약 단가와 납기 조건이 실제 이익을 정합니다
  • 국내 계통 투자 — 해외 호황과 국내 전력망 지연이 계속 벌어지면, 정작 국내 데이터센터가 같은 줄에 서게 됩니다

AI 인프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건 모델과 칩인데, 정작 일정을 붙잡고 있는 건 철심과 권선기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한국 회사들이 서 있다는 건, 다음 몇 년을 읽을 때 꽤 쓸모 있는 사실이에요.

참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