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를 기름에 통째로 담가 식히는 방식이 있습니다. 액침냉각이라고 부르는데, 랙 한 대가 100kW를 넘어가는 AI 서버에서는 공기로 식히는 게 물리적으로 안 되니까요.

그런데 이 방식이 한국에서는 유독 더디게 퍼집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담그는 기름이 법적으로 위험물이 되기 때문이에요.

유전체 액체에 서버를 담근 액침냉각 시스템 실물 유전체 액체에 서버를 담근 액침냉각 시스템 실물 —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담그는 방식에도 두 갈래가 있다

냉각유가 끓어 증기가 되었다가 다시 응축되는 개념 컷 냉각유가 끓어 증기가 되었다가 다시 응축되는 개념 컷 — 출처: 공개 자료 기반 자가 생성

공기의 열전도율은 물의 25분의 1 수준입니다. 랙당 수십 kW를 넘어서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열을 못 빼내요. 그래서 칩에 냉각판을 붙이거나(DLC), 아예 액체에 담급니다.

액침냉각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유체에 서버를 통째로 넣는 방식인데, 여기서 다시 둘로 갈립니다.

단상 — 끓이지 않고 돌린다

단상(single-phase)은 냉각유가 액체 상태를 유지한 채 순환합니다. 열을 머금은 기름을 펌프로 빼내 열교환기에서 식힌 뒤 다시 넣는 구조예요. 펌프 동력이 들지만 유체를 고르기가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2상 — 끓여서 식힌다

2상(two-phase)은 칩에서 나온 열로 냉각유를 끓입니다. 기화된 증기가 탱크 위쪽 응축기에서 다시 액체로 돌아와 떨어지고요. 상변화 자체가 열을 나르니 펌프가 덜 필요하고 효율이 높습니다. 3M은 이 방식으로 PUE 1.02까지 본다고 제시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2상이 되려면 유체가 적당한 온도에서 끓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끓는점이 낮은 유체를 써야 하는데, 끓는점이 낮으면 인화점도 낮기 쉽습니다. 뒤에서 볼 규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지점이에요.

한 대에 얼마나 들어가느냐도 규모가 있습니다. GRC의 액침 시스템은 42U 랙 두 개를 담는 모델이 최대 184kW, 네 개짜리가 368kW를 처리합니다. 그 탱크를 채우는 게 전부 기름입니다.

담근 다음이 더 번거롭다

효율만 보면 답이 나온 것 같지만, 운영으로 넘어가면 조건이 붙습니다.

먼저 유지보수입니다. 서버 한 대를 손보려면 탱크에서 꺼내 기름을 빼야 합니다. 공랭 데이터센터에서 랙 앞문을 열고 슬라이드로 뽑아내던 작업과는 절차가 다릅니다.

하중도 걸립니다. 탱크에 유체를 가득 채우면 바닥에 걸리는 무게가 크게 늘어요. 기존 건물을 개조해 들이려면 구조 검토가 먼저 필요합니다.

부품 호환성도 남아 있습니다. 액침 환경에서 쓸 수 있는 서버 부품은 일반 서버용보다 선택지가 좁습니다. 유체에 잠기는 조건을 서버 제조사가 보증해 줘야 하는데, 그 목록이 아직 넉넉하지 않아요.

그래서 탱크에 통째로 담그는 대신 캐비닛 형태로 구획을 나누는 방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SK엔무브가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서 돌린 실증에서는 냉각에 드는 전력이 93% 줄었다고 보고됐는데, 이런 수치는 비교 대상과 측정 구간에 따라 달라지니 조건을 함께 봐야 합니다.

250℃라는 경계선

위험물안전관리법 제4류 인화성액체 인화점 구간 위험물안전관리법 제4류 인화성액체 인화점 구간 — 출처: 직접 작성 (자료: 소방청)

위험물안전관리법은 인화성 액체를 인화점으로 나눕니다. 휘발유 같은 제1석유류가 21℃ 미만, 경유·등유가 속한 제2석유류가 21~70℃, 제3석유류가 70~200℃, 기어유·실린더유가 속한 제4석유류가 200~250℃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위쪽 끝입니다. 이 분류는 인화점 250℃ 미만까지만 다룹니다. 즉 인화점이 250℃ 이상이면 애초에 위험물이 아니게 돼요.

위험물이 되면 무엇이 붙나

제4석유류의 지정수량은 6,000리터입니다. 이 양을 넘겨 저장·취급하면 위험물 제조소등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고, 시설 기준과 안전 관리 의무가 따라옵니다.

항목 제4석유류 기준
인화점 200~250℃ 미만
지정수량 6,000리터
안전거리 지정수량 20배 미만 시 면제

안전거리 쪽에는 완화 규정이 있습니다. 제4석유류나 동식물유류를 저장하는 옥내저장소로서 최대수량이 지정수량의 20배 미만이면 안전거리를 두지 않아도 됩니다. 인화점이 높은 기름이라 상온에서 불이 잘 붙지 않는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죠.

그래도 규모가 문제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다루는 양입니다. 탱크 한 대에 수백 리터가 들어가는 시스템을 여러 대 놓으면 6,000리터는 금세 넘습니다. 서버실 한 층이 위험물 취급 시설이 되는 셈이에요.

인화점 250℃ 이상 제품을 쓰면 이 계산 자체가 사라집니다. 업계에서 한국은 250℃ 이상을 요구한다고 줄여 말하는 게 이 이야기예요. 법이 그 숫자를 명시해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 아래로 내려가면 건물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해외는 기준이 다르다

미국과 유럽은 인화점 100℃ 이하 유체도 데이터센터에 쓸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을 국내에 그대로 가져오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어요. 같은 장비, 같은 설계여도 유체만 새로 맞춰야 합니다.

기술 격차가 아니라 규제 격차입니다

2상의 발밑이 무너졌다

규제 경계가 냉각 유체 공급을 갈라놓는 개념 컷 규제 경계가 냉각 유체 공급을 갈라놓는 개념 컷 — 출처: 공개 자료 기반 자가 생성

2상 액침은 그동안 불소계 유체에 기대 왔습니다. 끓는점을 원하는 온도에 맞출 수 있고 절연성과 열 안정성이 좋아서요. 대표 제품이 3M의 Novec과 Fluorinert 계열이었습니다.

그런데 3M이 2022년 12월 PFAS 생산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계열 제품의 최종 주문은 2025년 3월로 마감됐고, 생산은 2025년 말에 끝났습니다.

PFAS가 뭐길래

과불화화합물은 탄소와 불소의 결합이 워낙 강해 자연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화학물질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고, 각국 규제가 조여 오면서 제조사가 사업 자체를 정리한 것입니다.

액침냉각 입장에서는 성능이 좋은 유체가 규제 때문에 시장에서 사라진 셈이에요. 대체 유체를 찾는 작업이 업계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국내는 단상 위주

인화점 규제로 저인화점 유체를 쓰기 어렵고, 2상의 주력이던 불소계는 공급이 끊겼습니다. 국내에서 주로 단상 액침이 채택되는 배경입니다. 효율의 2상이냐 범용성의 단상이냐를 두고 업계 논쟁이 이어지는 중이고요.

그래서 정유사가 데이터센터에 들어왔다

고인화점 절연 유체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정유·윤활유 회사입니다. 국내 정유 4사가 이 시장에 들어온 배경이에요.

기업 제품 특징
GS칼텍스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S NSF 식품등급·생분해성
S-OIL e-쿨링 솔루션 인화점 250℃ 이상
HD현대오일뱅크 엑스티어 E-쿨링 GRC 인증 국내 첫 취득
SK엔무브 절연 냉각액 GRC 지분 투자

GS칼텍스는 2023년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S를 내놓고 삼성SDS·Supermicro·LG유플러스와 검증을 진행했습니다. 식품등급 인증과 생분해성을 앞세운 게 특징이에요.

S-OIL은 2024년 10월 e-쿨링 솔루션을 발표했습니다. 인화점 250℃ 이상을 맞춰 위험물 규제 조건을 충족시킨 제품이고, 데이터센터와 ESS 시설에서 실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로 2025년 말 GRC의 ElectroSafe 인증을 국내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SK엔무브는 2022년 GRC에 투자하고 2023년 Dell과 상용화 협약을 맺은 뒤,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서 실증을 돌렸습니다.

장비 쪽도 붙었습니다. LG전자는 자체 CDU 기술로 LG유플러스 평촌2센터에 액체냉각 솔루션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SK엔무브·LG전자·GRC가 냉각액과 칠러, 침지 탱크를 나눠 맡는 3자 동맹을 꾸렸습니다. KT클라우드도 실증을 진행 중이고요.

규제가 진입 장벽이면서 동시에 국내 업체의 자리를 만든 셈입니다. 250℃ 이상 제품은 한국과 일본처럼 안전 규제가 엄격한 시장에서 수요가 생깁니다.

냉각유는 국산인데, 서버는

AI 데이터센터 장비 국산화율 AI 데이터센터 장비 국산화율 — 출처: 직접 작성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여기서 그림이 갈립니다. 냉각 쪽은 국내 기업이 자리를 잡아 가는데, 정작 그 안에 들어가는 장비는 대부분 수입이에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 기준으로 서버 국산화율은 3.3%, 스토리지는 1.82%입니다. UPS가 8%, 수랭식 칠러가 40%로 설비 쪽은 사정이 낫습니다.

냉각유와 칠러를 국산으로 채워도 그 안에서 돌아가는 서버와 스토리지는 사 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AI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는 계획이 늘어날수록 이 빈칸이 커져요.

식히는 기술은 갖췄는데 식힐 물건이 없습니다

정리하면

액침냉각이 국내에서 더딘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유체입니다. 인화점 250℃를 넘겨야 위험물 규제 밖으로 나가는데, 해외 제품은 그 기준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2상 액침이 쓰던 불소계는 PFAS 규제로 공급이 끊겼고요.

그 빈자리를 국내 정유사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규제가 만든 장벽이 동시에 국내 공급망의 입구가 된 구조인데, 서버 국산화율 3.3%가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참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