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주소를 사고파는 시장이 있습니다. 2011년에 새 IPv4 주소가 동나면서 생긴 중고 시장이고, 한때는 주소 하나가 60달러까지 갔습니다. 그게 지금은 20달러입니다.
값이 3분의 1로 내려갔으면 통신사들이 주소를 다시 사들여 이용자에게 하나씩 나눠줄 법도 한데, 현실은 반대로 갑니다. 주소 하나를 수십 명이 나눠 쓰는 구조는 더 굳어지고 있고, 그 구조 때문에 봇이 아닌 사람이 봇 취급을 받습니다. 값이 내려간 이유와 공유가 굳는 이유는 둘 다 수요가 IPv6 로 옮겨간 결과입니다.
정점의 3분의 1 — 주소값이 꺾인 자리
IPv4 주소 1개당 평균 거래가 — 출처: 자가 생성
2026년 상반기에 이전된 IPv4 주소는 2,970만 개,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5,940만 개입니다. 거래량은 여전히 많은데 가격이 무너졌습니다. 같은 기간 주소 1개당 평균가와 중앙값이 20.04달러와 20.00달러, 2021년 말 60달러 근처였던 정점 대비 66% 하락입니다. 한 개에 2만 8천원쯤이라는 뜻이에요.
크기별로 보면 대형 블록이 더 싸게 나갑니다.
| 블록 크기 | 주소 1개당 거래가 | 성격 |
|---|---|---|
| /16 ~ /18 (1만 6천~6만 5천 개) | 13~16달러 | 대량 매물, 한 번에 처분 |
| /19 ~ /22 (1천~8천 개) | 18~24달러 | 실수요 중심, 상대적 강세 |
값을 끌어내린 요인은 셋인데, 방향이 전부 같습니다.
① 자금 조달 비용이 올랐다
IPv4 주소는 가만히 들고 있어도 이자가 붙지 않는 자산입니다. 저금리 시절에는 “언젠가 오른다”는 기대만으로 사재기가 성립했지만, 조달 금리가 오르자 그 논리가 먼저 무너졌습니다. 보유 비용이 실제로 발생하는 자산이 된 겁니다.
② 클라우드가 주소를 반납시켰다
AWS가 2024년 2월부터 퍼블릭 IPv4 주소에 시간당 0.005달러, 연 43.80달러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매입가 20달러짜리 주소를 1년 빌리는 데 그 두 배를 내는 구조가 되니, 안 쓰는 주소를 방치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유휴 주소가 시장으로 나오면서 매물이 늘었고요.
③ 수요 쪽이 IPv6로 빠졌다
2026년 3월 구글 측정 기준으로 IPv6 접속 비율이 처음 50%를 넘었습니다. 새로 짓는 인프라가 IPv4 주소를 덜 요구하기 시작하면 시장은 재고 자산의 성격을 다시 매깁니다.
한 줄 요약: 주소값이 내린 건 공급이 늘어서가 아니라 들고 있을 이유가 줄어서다.
그래도 CGNAT은 걷히지 않는다
싸진 주소와 걷히지 않는 공유 개념 컷 — 출처: 자가 생성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주소가 싸졌으면 통신사가 사서 가입자에게 하나씩 주면 될 텐데, 실제로는 여러 명이 주소 하나를 나눠 쓰는 CGNAT(Carrier-Grade NAT, 캐리어급 주소 변환)이 그대로 남습니다. 이유는 두 갈래입니다.
가입자 수만큼 곱해지기 때문에
가입자 100만 명에게 주소를 하나씩 주려면 주소 100만 개가 필요합니다. 개당 20달러여도 2천만 달러(약 280억원) 입니다. 개당 값이 3분의 1이 돼도 곱하는 수가 백만 단위면 결재 라인이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CGNAT 장비 몇 대로 같은 가입자를 수용하는 쪽이 여전히 쌉니다.
파는 쪽도 값이 더 떨어질 거라고 보기 때문에
임대 시장이 이 불신을 드러냅니다. 주소 하나의 임대료가 월 0.59달러니 연 7.08달러, 매입가 20달러에 대비하면 연 35% 총수익률입니다. 정상적인 자산이라면 이런 수익률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 사서 빌려주면 3년이 안 돼 원금을 뽑으니까요. 이 숫자가 유지된다는 건 파는 쪽이 “장기적으로는 가치가 더 떨어진다”고 본다는 뜻입니다.
통신사도 같은 판단을 합니다. 30년 쓸 자산이 아니라 10년 뒤 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물건이면 사는 것보다 CGNAT으로 버티는 게 합리적입니다. 문제는 그 합리성의 비용을 통신사가 아니라 이용자가 낸다는 점입니다.
주소 하나 뒤에 몇 명이 서 있나
Cloudflare 가 정리한 NAT444 경로 — 출처: Cloudflare
CGNAT이 걸린 회선은 주소 변환을 두 번 거칩니다. 그래서 NAT444 라고 부릅니다.
집 안 기기는 공유기에서 192.168.x.x 같은 사설 주소를 받습니다(1차 변환). 그 공유기가 통신사 망에 붙을 때 받는 것도 공인 주소가 아니라 100.64.x.x 대역입니다. 그리고 통신사의 CGNAT 장비가 이 대역을 다시 진짜 공인 주소로 바꿔 인터넷으로 내보냅니다(2차 변환).
집에서 인터넷까지 사이에 사설 대역이 두 겹, 변환 장치가 두 대 끼어 있는 구조입니다. 바깥에서 우리 집으로 먼저 연결을 걸 방법은 이 구조에서 원리적으로 없습니다 — CGNAT 장비 입장에서 그 공인 주소는 수십 명이 공유하는 것이고, 들어온 패킷을 누구에게 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uropol 집계로는 모바일 사업자의 90%, 유선 사업자의 50% 가 이미 이 방식을 씁니다. 휴대폰으로 접속할 때 공인 IP를 못 받는 게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라는 뜻이에요.
인터넷 어디에도 없는 대역, 100.64.0.0/10
100.64.0.0/10 등록 정보 조회 — 출처: 자가 생성
CGNAT용 대역은 따로 예약돼 있습니다. IANA가 2012년에 등록한 100.64.0.0/10, 약 400만 개짜리 블록이고 RFC 6598이 정의합니다. 등록 정보를 직접 조회해 보면 이름 자체가 SHARED-ADDRESS-SPACE, 종류가 IANA Special Use 로 찍힙니다.
이 대역이 왜 따로 필요했느냐면, 통신사가 기존 사설 대역(10.x·192.168.x)을 그 자리에 쓰면 가입자 집 안의 사설 대역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집 공유기가 192.168.0.0/24를 쓰는데 통신사도 같은 대역을 쓰면 라우팅이 꼬입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안 쓰고 인터넷에도 안 나가는” 중간 대역을 하나 새로 뗀 겁니다.
- 내 회선이 CGNAT인지 확인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공유기 관리 화면의 WAN 주소가 100.64~100.127로 시작하면 CGNAT입니다. 또는 웹에서 확인한 공인 IP와 공유기 WAN 주소가 다르면 그 사이에 변환이 한 겹 더 있다는 뜻이고요.
한 주소에 몇 명이 붙어 있는지는 지역이 정한다
대륙별 CGNAT 주소당 이용자 수 — 출처: Cloudflare
Cloudflare가 2025년 초 CGNAT 주소를 분류해 대륙별로 재 봤습니다. CGNAT /24 블록 하나당 잡히는 이용자 수의 중앙값이 아프리카는 30명 가까이, 다른 대륙은 대체로 10명 안팎입니다. 아프리카 상단은 130명을 넘습니다.
이 격차는 기술 격차가 아니라 역사적 배분 격차입니다. IPv4 주소는 인터넷이 먼저 깔린 북미와 유럽에 몰려 배분됐고, 나중에 들어온 지역은 처음부터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같은 인터넷을 쓰는데 뒤에 선 사람 수가 세 배 다른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주소 하나에 붙은 사람이 늘면 갈라 쓸 포트도 줄어듭니다. 공인 주소 하나에 포트는 65,536개뿐이라 단순히 나누면 이렇게 됩니다.
| 한 주소를 공유하는 인원 | 1인당 포트 | 체감 |
|---|---|---|
| 32명 | 2,048개 | 대체로 문제 없음 |
| 64명 | 1,024개 | 탭을 많이 연 브라우저에서 간헐적 실패 |
| 128명 | 512개 | 화상회의·게임 동시 사용 시 연결 실패 |
브라우저 탭 하나가 수십 개 연결을 열고, 화상회의와 게임은 그보다 더 씁니다. 포트가 모자라면 “인터넷은 되는데 특정 서비스만 안 되는” 증상이 나옵니다. 원인을 짚기 가장 어려운 종류의 장애예요.
봇이 아닌데 3배 더 막힌다
평균 봇 점수 — CGNAT 주소와 그 밖의 주소 — 출처: 자가 생성
같은 조사에서 Cloudflare는 CGNAT 주소 20만여 개, VPN·프록시 주소 18만 개, 그 밖의 주소 90만 개를 분류해 트래픽 성격을 비교했습니다. 결과가 뒤집혀 있습니다.
CGNAT 주소의 평균 봇 점수는 7.0%, 그 밖의 주소는 13.1% 입니다. 자동화 트래픽일 확률이 CGNAT 쪽이 오히려 절반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속도 제한에 걸리는 빈도는 3배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주소 하나 뒤에 100명이 있으면 그 주소에서 나오는 요청 수가 100배로 보입니다. 방어 시스템은 사람과 봇을 요청 빈도로 구분하는데, 공유 주소는 그 기준에서 자동으로 봇처럼 생겼습니다. 게다가 그 100명 중 한 명만 악성 행위를 해도 나머지 99명이 같이 차단됩니다.
Cloudflare는 이걸 “인터넷의 보이지 않는 편향”이라고 불렀습니다. 주소를 덜 받은 지역의 이용자가 그 이유만으로 더 자주 캡차를 풀고 더 자주 막히는 구조니까요.
IP 하나를 이용자 하나로 가정한 시스템은, 수십 명이 한 주소를 쓰는 회선에서 무고한 이용자를 함께 차단합니다.
IP가 사람을 못 가리킬 때
IP가 사람을 못 가리키는 상황 개념 컷 — 출처: 자가 생성
IP 주소를 신원의 대용품으로 쓰는 관행은 인터넷만큼 오래됐습니다. 그 관행이 CGNAT 아래에서 전부 어긋납니다.
| 무엇이 | 어떻게 어긋나나 |
|---|---|
| 수사·법적 요청 | 주소만으로 가입자를 특정할 수 없다 — 포트 번호와 정확한 시각까지 있어야 하고, 그 로그를 통신사가 갖고 있어야 한다 |
| 접속 차단·평판 | 한 명의 악용이 그 주소를 쓰는 전원에게 옮는다 |
| DDoS 방어 | 공격 주소를 막으면 그 뒤의 정상 이용자가 통째로 끊긴다 |
| DNS 필터링 | 주소 단위로 거는 설정이 다른 가입자에게 같이 적용된다 |
| P2P·원격 접속 | 바깥에서 먼저 연결을 걸 수 없어 홈서버·NAS·게임 호스팅이 막힌다 |
| 위치 기반 서비스 | 변환 장치가 놓인 위치가 잡혀 실제 접속 지역과 어긋난다 |
첫 줄이 제일 무겁습니다. Europol은 CGNAT 때문에 접속 사업자가 가입자 식별이라는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고 지적하며, 사업자들에게 CGN 사용을 줄이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주소 하나에 수천 명이 걸리면 수사 대상이 수천 명으로 불어나는데, 그중 관련자는 한 명입니다.
통신사 입장에서 이걸 해결하려면 변환 로그를 전부 남겨야 합니다. CGNAT 장비는 초당 수백만 건의 세션을 만들고, 그 로그를 법정 요구 기간만큼 보관하는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CGNAT으로 아낀 주소값이 로그 저장 비용으로 되돌아오는 구조인 셈입니다.
CGNAT 으로 아낀 주소값은 이용자의 연결 실패와 통신사의 로그 보관 비용으로 되돌아옵니다.
정리
IPv4 주소값이 정점의 3분의 1이 된 건 시장이 이 자산의 미래를 낮게 본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값이 싸졌다고 공유가 풀리지는 않습니다 — 가입자 수를 곱하면 여전히 큰돈이고, 가치가 더 떨어질 자산을 대량 매입할 이유가 통신사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남는 건 셋입니다.
값이 내려간 이유와 CGNAT 이 남는 이유는 같습니다 — 둘 다 수요가 IPv6 로 옮겨간 결과입니다.
CGNAT의 비용은 청구서가 아니라 연결 실패·캡차·오차단으로 이용자에게 옵니다.
이 문제를 실제로 푸는 건 주소를 더 사는 게 아니라 IPv6를 켜는 쪽입니다. 주소가 남아돌면 나눠 쓸 이유가 없어집니다.
집에서 홈서버가 안 열리거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캡차가 자꾸 뜬다면 회선 문제도 설정 문제도 아닐 수 있습니다. 주소 하나 뒤에 몇 명이 서 있는지가 원인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참고 출처
- [ipregistry] The IPv4 Market at Mid-2026 — 거래량·평균가·블록 크기별 시세·임대 수익률
- [Cloudflare] One IP address, many users: Detecting CGNAT to reduce collateral effects (본문 도표 2점 출처)
- [The Register] ISPs more likely to throttle netizens who connect through carrier-grade NAT
- [IETF] RFC 6598, IANA-Reserved IPv4 Prefix for Shared Address Space
- [SIDN] CGNAT frustrates all IP address-based technologies — 주소 기반 기술의 오작동 정리
- [Help Net Security] Europol wants ISPs to aid law enforcement by dropping CGN technologies — 모바일 90%·유선 50% 수치
- [Amazon Web Services] Amazon VPC Pricing — 퍼블릭 IPv4 시간당 단가
- [Internet Society Pulse] 18 Years Later, IPv6 Reaches Majority — 2026-03 IPv6 과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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