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탄에서 SMR이 무엇인지 봤다면, 이번엔 그게 실제로 어디까지 왔는지를 볼 차례입니다.

숫자만 보면 이미 판이 끝난 것 같습니다. 2026년 5월 기준으로 빅테크가 서명한 원자력 계약은 13건, 합계 9.8GW. 원전 여섯 기 분량이에요.

그런데 같은 자료를 다른 각도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 2027년에 실제로 켜지는 건 835MW 한 건이고, 그마저도 새로 지은 SMR이 아니라 1979년 사고로 유명한 그 발전소의 옆 호기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이번 편은 그 간극을 봅니다.

누가 무엇에 서명했나

발표된 빅테크 원자력 계약 규모 비교 (로그 눈금) 발표된 빅테크 원자력 계약 규모 비교 (로그 눈금) — 출처: 각 사 발표 기반 자가 렌더

구매자 상대 규모 형태
Microsoft Constellation (TMI 1호기) 835MW 20년 PPA, 약 160억 달러
Google Kairos Power 500MW (2035년까지) PPA — TVA를 거쳐 공급
Amazon X-energy · Energy Northwest 초기 320MW → 960MW 7억 달러 투자, 2039년까지 5GW 목표
Meta TerraPower 4GW 공급 계약
Meta Constellation (Clinton) 1,121MW 20년 PPA (기존 원전)
Switch Oklo 12GW 마스터 계약 (구속력 없음)

PPA(Power Purchase Agreement)는 장기 전력구매계약입니다. “이 발전소가 만드는 전기를 20년간 사겠다”는 약속이라, 발전 사업자 입장에서는 은행에 들고 갈 수 있는 담보가 됩니다. 빅테크가 전기를 사는 게 아니라 사실상 발전소 건설을 보증하는 구조예요.

계약을 형태로 나누면 세 갈래입니다.

① 기존 원전을 사는 계약 — 지금 당장 전기가 나온다

Microsoft가 Constellation과 맺은 계약이 여기 해당합니다. 새 원자로가 아니라 2019년에 경제성 때문에 멈춘 스리마일섬 1호기를 되살리는 것이에요. Meta가 일리노이 Clinton 발전소와 맺은 20년 계약도 같은 성격입니다 — 문 닫을 뻔한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거죠.

② SMR을 미리 사 두는 계약 — 2030년대 이야기

Google–Kairos, Amazon–X-energy, Meta–TerraPower가 여기입니다. 아직 완성된 적 없는 노형을 미리 계약해 개발 자금을 대는 구조라, 전기는 빨라야 2030년입니다.

③ 부지와 순번을 잡아 두는 MOU

Oklo와 데이터센터 사업자 Switch가 맺은 12GW 계약이 대표적입니다. 규모는 이 표에서 가장 크지만 양쪽 모두에 구속력이 없는 기본 합의이고, 개별 프로젝트마다 따로 구속력 있는 계약을 맺기로 돼 있습니다.

발표된 용량의 크기와 그 계약의 무게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콘크리트는 어디에 부었나

서명된 계약과 실제로 첫 삽을 뜬 부지 사이의 간극 서명된 계약과 실제로 첫 삽을 뜬 부지 사이의 간극 — 출처: agy 생성

계약서 말고 실제로 땅을 판 곳만 추리면 목록이 확 짧아집니다.

프로젝트 기술 현재 상태 목표
Kairos Hermes 2 (테네시 오크리지) KP-FHR 용융염 건설 중 2030년 가동, 50MWe
Oklo Aurora-INL (아이다호) 소듐냉각 고속로 2025년 9월 착공 2028년 첫 가동 목표
TVA Clinch River (테네시) BWRX-300 NRC 심사 막바지 2028년 말 원자로 착공, 2032년 가동
Amazon Cascade (워싱턴주) Xe-100 4기 설계·인허가 단계 2020년대 말 착공

데이터센터로 원자력 전기가 실제로 들어오는 시점 (2027~2035) 데이터센터로 원자력 전기가 실제로 들어오는 시점 (2027~2035) — 출처: 각 사·규제기관 발표 목표 기반 자가 렌더

이 일정을 한 줄에 늘어놓으면 가장 빠른 것도 내년, 대부분은 2030년대라는 게 한눈에 보입니다.

Kairos Hermes 2 — 구글 전기의 실체

Google이 서명한 500MW의 첫 조각은 Hermes 2 한 기, 50MW입니다. 2025년 8월 TVA·Kairos·Google 3자 계약으로, TVA가 Kairos에게서 전기를 사서 테네시·앨라배마의 Google 데이터센터가 있는 계통에 넣는 구조예요. 미국 전력회사가 4세대 원자로 전기를 사기로 한 첫 계약입니다.

여기서 짚을 게 있습니다. Google 데이터센터에 원자로가 직접 연결되는 게 아닙니다. 전기는 TVA 계통으로 들어가고, Google은 그만큼을 계통에서 씁니다.

Oklo Aurora-INL — 가장 빠른 후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서 2025년 9월에 착공했고, 2028년 첫 가동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시공은 Kiewit, 터빈 계통은 Siemens Energy가 맡았어요. 지금 나온 일정 중에서는 새로 짓는 원자로 가운데 가장 빠른 축입니다.

TVA Clinch River — 미국 최초의 SMR 건설허가

TVA는 2025년 5월 미국 최초로 SMR 건설허가를 신청했고, NRC 실무진은 2026년 6월 안전성평가를 마치며 허가 발급을 권고했습니다. 의무 청문은 2026년 8월 13일로 잡혔습니다. 다만 허가를 받아도 원자로 착공은 2028년 말, 가동은 2032년 말 목표예요.

세계 최초 타이틀은 어디로 가나

링룽1호(ACP100) 주요 제원 — 열출력 385MWt·전기출력 125MWe 링룽1호(ACP100) 주요 제원 — 열출력 385MWt·전기출력 125MWe — 출처: IAEA ARIS

미국 프로젝트들이 2028~2032년을 보는 사이, 중국은 2026년 상반기 상업운전을 목표로 걸었습니다. 하이난성 창장의 링룽1호(ACP100), 125MWe 일체형 가압경수로예요. 2021년 7월에 첫 콘크리트를 부었고 2025년 12월에는 비핵 증기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성공하면 세계 최초의 육상 상업용 SMR이 됩니다. 다만 지금 상태를 정확히 적으면 이렇습니다 — 2026년 5월 20일 기준 IAEA 자료에는 최초 임계도, 계통 연결도, 상업운전 개시도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8월 현재까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는 공식 발표는 확인되지 않아요. 목표는 목표대로 보고, 개시 발표가 나올 때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설계는 밖에서, 주기기는 국내에서 만드는 공급망 구조 설계는 밖에서, 주기기는 국내에서 만드는 공급망 구조 — 출처: agy 생성

한국의 위치는 조금 독특합니다. 자체 설계(i-SMR)와 남의 설계 제작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 두산에너빌리티는 NuScale·TerraPower·X-energy 등 해외 설계사의 주기기 제작을 맡고 있습니다. 앞서 본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지어질수록 일감이 늘어나는 자리예요
  •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8월 TerraPower에 투자해 2대 주주가 됐고,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협력하고 있습니다
  • i-SMR은 2026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했고, 상용화 목표는 2035~2036년입니다

다만 국내에는 아직 데이터센터와 원자로를 직접 묶는 제도가 없습니다. 1탄에서 본 것처럼 국내 데이터센터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거쳐 한전 계통에 접속하는 방식이고, 미국식 코로케이션이나 전용 PPA에 해당하는 틀이 마련돼 있지 않아요.

9.8GW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발표된 계약 총량과 2027년 실제 가동 예정 용량 발표된 계약 총량과 2027년 실제 가동 예정 용량 — 출처: 공개 집계 기반 자가 렌더

이제 처음 숫자로 돌아가겠습니다.

  • 발표된 계약 13건 9.8GW 중 절반 가까이가 기존 원전을 사는 계약입니다. 새 원자로가 아니에요
  • 새로 짓는 것 중 가장 빠른 게 2028년 Oklo Aurora(75MWe급 한 기)이고, 나머지는 2030년대입니다
  • 가장 큰 숫자인 12GW는 구속력 없는 합의입니다
  • Meta가 올해 초 낸 원자력 공모에는 50건 넘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목표 규모는 1~4GW이고 아직 후보를 좁히는 단계입니다

“빅테크가 원자로를 산다”는 헤드라인의 상당 부분은 2030년대 예약이고, 지금 데이터센터에 실제로 들어가는 원자력 전기는 수십 년 된 기존 원전에서 나옵니다.

그렇다고 이 계약들이 허깨비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원자력 산업이 20년 넘게 못 구하던 게 첫 호기의 자금과 수요 보증이었는데, 그걸 지금 빅테크가 대고 있습니다. Kairos가 콘크리트를 붓고 Oklo가 터빈을 발주한 건 계약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서명이 전기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직 아무도 줄이지 못했습니다. 1탄에서 본 계통 접속 5년, 가스터빈 8년과 같은 종류의 시간이에요.

정리 — 계약과 전기 사이

  • 지금까지 서명된 원자력 계약은 13건 9.8GW, 형태는 기존 원전 PPA·SMR 선구매·부지 선점 MOU 세 갈래
  • 2027년 첫 전기는 스리마일섬 1호기 재가동분 835MW — 새 SMR이 아닙니다
  • 새로 짓는 것 중 가장 빠른 후보는 2028년 Oklo Aurora, 그다음이 2030년 Kairos Hermes 2
  • 세계 최초 상업용 SMR 타이틀은 중국 링룽1호가 유력하지만, 아직 개시 발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가 “무엇이 계약됐고 무엇이 지어지고 있나”입니다. 남은 질문은 하나예요 — 이게 실제로 수지가 맞나. 2028년에 켜진다는 원자로의 전기는 얼마일지, 왜 한때 가장 앞서 있던 NuScale의 첫 프로젝트가 취소됐는지, 폐기물과 주민 수용성은 어떻게 되는지. 다음 편에서 숫자로 따져 보겠습니다.

참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