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옆에 낸드를 한 층 더 쌓는 이야기가 메모리 용량을 늘리는 쪽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메모리를 GPU 옆에서 아예 떼어내자는 이야기입니다.
SK하이닉스 연구진이 미국·싱가포르 대학들과 함께 쓴 논문이 8월 19일 Nature Electronics 에 실렸습니다. 주제는 칩과 칩을 구리 배선 대신 빛으로 잇는 기술입니다.
메모리를 만드는 회사가 배선 기술 로드맵을 학술지에 낸다는 게 좀 낯설게 들립니다. 논문을 읽어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RAM에 대하여 (6) — HBM 옆에 낸드를 쌓는 새 계층, HBF
논문에 참여한 SK하이닉스 연구진, 뒤 화면은 Nature Electronics 지면 — 출처: SK hynix Newsroom
어떤 논문인가
논문 Fig. 1c — 칩 안(마이크로미터)부터 랙 사이(킬로미터)까지 거리 스케일 세 단 — 출처: Nature Electronics (Fig. 1c 부분 크롭)
논문이 다루는 범위가 위 그림 한 장에 들어 있습니다. 칩 안 몇 마이크로미터부터 랙과 랙 사이 킬로미터까지, 거리 구간마다 무엇으로 잇는 게 맞는지를 한 판에 놓고 따집니다.
| 항목 | 내용 |
|---|---|
| 제목 | Co-packaged optics for high-performance computing and artificial intelligence |
| 저널·게재일 | Nature Electronics · 2026-08-19 |
| 권·쪽 | 9권 853~867쪽 |
| 유형 | Review Article |
| 교신저자 | Seunghoon Hong · Kyusang Lee |
교신저자는 SK하이닉스에서 AI 인프라를 맡고 있는 홍승훈 팀장과 미국 버지니아대(University of Virginia) 전기컴퓨터공학과 이규상 교수입니다. 저자는 모두 12명이고 SK하이닉스와 University of Virginia 외에 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 MIT,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연세대가 참여했습니다.
먼저 짚을 것 — 이건 실험 논문이 아닙니다
유형이 Review Article 입니다. 새로 만든 칩을 측정해서 성능을 보고한 글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기존 연구를 정리하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 글입니다. 그래서 뒤에 나오는 숫자들은 달성한 값이 아니라 달성해야 할 목표값입니다.
이 구분을 흐리면 기사 제목만 읽고 이미 되는 기술이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아직 상용 제품은 없습니다.
주: 논문 본문은 유료 구독이라, 이 글은 공개된 초록과 SK하이닉스가 공식 공개한 자료를 근거로 정리했습니다.
연산은 8.8배씩 뛰는데 선은 1.4배입니다
AI 연산과 인터커넥트의 성장률 — 논문 재구성 도표 — 출처: SK hynix Newsroom
논문이 잡은 문제는 하나입니다. 계산하는 속도는 미친 듯이 빨라졌는데, 계산할 데이터를 옮기는 속도가 못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SK하이닉스가 논문 내용을 재구성해 공개한 도표를 보면 2년마다 늘어나는 배수가 이렇게 갈립니다.
| 구분 | 2년마다 |
|---|---|
| AI 모델 규모 | 8.8배 |
| 하드웨어 연산 성능 | 3.0배 |
| DRAM | 1.6배 |
| 인터커넥트 대역폭 | 1.4배 |
여기서 인터커넥트(interconnect) 는 칩과 칩, 서버와 서버를 잇는 통로를 말합니다. 도로에 비유하지 않고 그대로 쓰자면, 데이터가 지나다니는 배선과 그 배선을 굴리는 회로 전체입니다.
모델은 8.8배씩 커지는데 통로는 1.4배씩만 넓어집니다. 이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 GPU 를 아무리 많이 사도 절반은 데이터를 기다리며 놀게 됩니다. 논문은 이 지점을 대역폭 월(bandwidth wall), 그러니까 대역폭이 만드는 벽이라고 부릅니다.
구리가 안 되는 이유는 물리에 있습니다
초록에서 저자들은 전기 배선의 한계를 세 가지로 적었습니다. 저항 때문에 신호가 열로 새고, 배선이 축전기처럼 굴어서 신호가 느려지고,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파형이 뭉개진다는 것입니다.
속도를 올릴수록 이 셋이 같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요즘 고속 배선에는 뭉개진 파형을 되살리는 보정 회로가 붙는데, 이 회로가 다시 전력을 먹고 지연을 더합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이 문제를 키우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빛이 항상 이기는 건 아닙니다
논문 Fig. 1b — 거리에 따른 전기(주황)와 빛(파랑)의 효율 — 출처: Nature Electronics (Fig. 1b 부분 크롭)
논문에서 가장 오래 들여다볼 만한 그림입니다. 가로축은 신호가 가야 하는 최대 거리, 세로축은 대역폭 밀도와 에너지 효율을 곱한 값입니다. 위로 갈수록 좋습니다.
주황색 전기 쪽을 보면 패키지 안 1mm 남짓 거리에서는 값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HBM 과 UCIe Advanced 가 그 위쪽에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늘어날수록 이 선이 가파르게 떨어집니다.
파란색 빛 쪽은 반대입니다. 짧은 거리에서는 전기에 한참 못 미치는데, 거리가 늘어도 거의 안 떨어집니다.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이 대략 1m 부근이고, 논문은 그 근처를 보드 위 광 백플레인이 차지한다고 표시해 뒀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전기를 다 걷어내자가 아닙니다. 1m 안쪽은 여전히 전기가 유리하고, 그 바깥부터 빛이 유리합니다. CPO 가 노리는 건 그 경계선을 칩 쪽으로 더 당기는 일입니다.
구리 배선을 빛으로 바꾸면
기존 방식과 CPO 방식의 비교 — 논문 재구성 도표 — 출처: SK hynix Newsroom
논문이 내놓은 답이 CPO(Co-Packaged Optics) 입니다. 우리말로는 코패키지 옵틱스, 빛을 다루는 부품을 연산 칩과 같은 패키지 안에 넣는 방식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연산 칩(SoC)이 전기 신호를 만들면, 그 신호가 기판 위 구리 배선을 한참 달려 보드 가장자리의 광 엔진까지 갑니다. 거기서 비로소 빛으로 바뀌어 광섬유를 탑니다. 전기로 달리는 그 구간이 길수록 손실과 전력이 붙습니다.
CPO 는 빛으로 바꾸는 부품, 즉 광 트랜시버(TRx) 를 연산 칩 바로 옆으로 끌고 옵니다. 둘 사이를 잇는 판이 인터포저(interposer) 인데, 칩과 기판 사이에 깔아 배선을 촘촘하게 뽑아 주는 중간 판입니다.
전기로 달리는 거리를 최대한 짧게 자르고, 나머지는 전부 빛으로 보냅니다
논문은 이 판을 세 부분으로 나눠 분석합니다.
- 전기 서브시스템 — 드라이버, 수신기, 신호를 한 줄로 펴는 SerDes, 클록, 전력 관리
- 전기-광 변환부 —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변조기(modulator), 빛을 전기로 되돌리는 광검출기(photodetector)
- 광 전송망 — 빛이 지나는 길인 도파로(waveguide), 광섬유, 커플러, 스위치, 여러 파장을 한 가닥에 겹쳐 싣는 다중화 구조
이 셋 중 하나만 좋아서는 소용이 없다는 게 논문의 관점입니다. 대역폭·전력·지연은 세 부분이 함께 정하는 값이기 때문입니다.
숫자 세 개 — 100 Tb/s · 1 pJ/bit · 10 ns
SK하이닉스 로고 — 출처: SK hynix
논문이 차세대 AI 인프라의 조건으로 못 박은 목표값이 셋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되는 값이 아니라 가야 할 값입니다.
| 목표 | 값 |
|---|---|
| 노드당 대역폭 | 100 Tb/s 이상 |
| 비트당 에너지 | 1 pJ 미만 |
| 칩 간 지연 | 10 ns 미만 |
감이 잘 안 오는 단위라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100 Tb/s 는 초당 100조 비트, 바이트로 고치면 초당 12.5테라바이트입니다. 25GB 짜리 영화 500편을 1초에 옮기는 양이 서버 한 대에서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1 pJ/bit 의 pJ(피코줄)은 1조분의 1 줄입니다. 비트 하나 옮기는 데 쓰는 에너지인데, 위의 두 값을 곱하면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100조 비트를 비트당 1 pJ 로 옮기면 초당 100줄, 곧 100W 입니다. 선풍기 두 대 정도 전력으로 영화 500편어치를 매초 밀어 넣겠다는 목표입니다.
10 ns 는 1억분의 1초입니다. 빛이 광섬유 안에서 10ns 동안 가는 거리가 대략 2m 니까, 랙 안에서 칩과 칩이 오가는 거리 정도는 지연 없이 붙어 있는 것처럼 쓰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거기까지 가나
논문은 집적 방식을 세 단계로 그립니다. 뒤로 갈수록 신호가 다니는 거리가 짧아집니다.
| 단계 | 방식 |
|---|---|
| 2D | 칩과 광 엔진을 같은 기판에 나란히 |
| 2.5D | 사이에 인터포저를 깔아 촘촘하게 |
| 3D | 위로 쌓는 이종 집적 |
3D 쪽의 이종 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 은 성질이 다른 칩들, 여기서는 전자 회로와 광 회로를 한 덩어리로 수직으로 붙이는 방식입니다. 각각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공정으로 따로 만든 뒤 합치는 게 요점입니다.
메모리를 GPU 옆에서 떼어냅니다
옵틱스 중심 아키텍처 — XPU 풀과 메모리 풀 — 출처: SK hynix Newsroom
메모리 회사가 이 논문을 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논문이 가장 멀리 내다본 그림은 스위치나 네트워크가 아니라 메모리 인터페이스까지 빛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 구조는 GPU 하나에 HBM 몇 덩이가 딱 붙어 있는 모양입니다. 붙어 있으니 빠르지만, 그 GPU 가 쓰지 않는 용량은 옆 GPU 가 빌려 쓸 방법이 없습니다. 모델이 커질수록 이 낭비가 커집니다.
논문이 제시한 옵틱스 중심(Optics-centric) 아키텍처 는 연산 칩 무리와 메모리 무리를 아예 따로 세워 놓고 광섬유로 잇습니다. 메모리 쪽 판에는 광 인터포저(photonic interposer), 그러니까 빛을 그대로 받아 메모리 스택에 물려 주는 중간 판이 깔립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가속기가 멀리 있는 대용량 메모리를 함께 씁니다. 이 구조를 분리형 메모리 풀이라고 부릅니다. 네트워크를 거쳐 돌아가는 게 아니라 광 인터포저로 직접 물리기 때문에, 논문은 지연을 낮게 유지한 채로 나눠 쓰는 게 목표라고 적었습니다.
HBM 옆에 낸드를 붙여 계층을 하나 늘리는 접근과 방향이 다릅니다. 그쪽이 용량 계층을 만드는 일이라면, 이쪽은 메모리를 아예 공유 자원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저자들이 남긴 숙제
열과 정렬 — 광·전자 소자가 한 패키지에 놓일 때의 난제 개념 컷 — 출처: 개념 컷 · agy 자가 생성
리뷰 논문의 값어치는 여기 있습니다. 저자들은 상용화 전에 풀어야 할 문제를 직접 적었습니다.
- 열 관리 — 전력을 많이 먹는 연산 칩과 열에 예민한 광 소자를 한 패키지에 넣어야 합니다. 온도가 오르면 재료의 굴절률이 변해 빛이 지나는 길이 틀어집니다. 논문은 열을 갈라놓는 설계와 미세 유체 냉각을 함께 봐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 제조 정밀도 — 광섬유와 칩 위의 도파로를 맞추는 정렬 오차가 곧 손실입니다. 이걸 실험실이 아니라 양산 라인에서 반복해야 합니다.
- 표준화 — 인터페이스와 검사 절차가 회사마다 다르면 부품을 섞어 쓸 수 없습니다. 특히 메모리를 광으로 물릴 때 필요한 저지연 일관성 규약은 아직 업계 공통안이 없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흥미롭습니다. 논문은 구리를 전부 걷어내자고 하지 않습니다. 거리와 대역폭에 따라 전기와 빛을 나눠 맡기는 것이 답이라고 적었습니다. 짧은 구간은 전기가 여전히 싸고 빠릅니다.
주: 여기까지가 논문이 적은 한계이고, 아래 국내 이야기는 공개 자료로 덧붙인 관점입니다.
국내에는 무슨 의미일까
파운드리가 공표한 실리콘 포토닉스·CPO 일정 — 출처: TrendForce·The Elec 보도 종합 기반 자가 렌더
빛으로 칩을 잇는 기술은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 라고 부릅니다. 따로 만들던 광 부품을 실리콘 칩 위에 직접 새겨 넣는 공정입니다. 이 판이 지금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TSMC 는 COUPE 라는 이름으로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실리콘 포토닉스 진입을 공식화하고 300mm 웨이퍼 플랫폼과 공정 설계 키트(PDK)를 갖췄으며, 2027년 열압착 방식 광 엔진, 2028년 하이브리드 본딩 광 엔진, 2029년 CPO 턴키 서비스를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여기에 메모리 쪽에서 들어갑니다. 광 엔진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광으로 물릴 메모리를 만드는 회사이고,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가 SK하이닉스 AI 인프라 팀장이라는 사실이 그 위치를 보여 줍니다.
국내 광부품 업체들도 이미 이 공급망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디일렉 보도에 따르면 광 트랜시버, 정렬 장비, 레이저 패키지 같은 부품과 장비를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CPO 모듈 제조사에 대고 있습니다. HBM 때처럼 소재·부품·장비가 함께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앞으로 볼 것
NVIDIA 로고 — 출처: NVIDIA
- 엔비디아 Spectrum-X Photonics — CPO 를 적용한 네트워크 스위치입니다. 스위치에서 먼저 검증되고 나서 메모리로 내려오는 순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 표준 논의 — 광으로 물린 메모리를 여러 가속기가 나눠 쓰려면 규약이 먼저입니다. 어느 단체에서 누가 이 논의를 여는지가 신호입니다.
- 정렬 수율 — 실험실 성능보다 양산 수율이 이 기술의 일정을 정합니다. 파운드리들이 공표한 연도가 지켜지는지 보면 됩니다.
- 목표값과 실제값의 거리 — 100 Tb/s·1 pJ/bit·10 ns 에 실제 시제품이 얼마나 근접하는지가 다음 논문들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메모리 회사가 배선 로드맵을 학술지에 낸 이유는 결국 하나로 읽힙니다. 메모리를 더 빨리 만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병목이 안 풀린다는 판단입니다.
RAM에 대하여 (6) — HBM 옆에 낸드를 쌓는 새 계층, HBF
참고 출처
- [Nature Electronics] Kim, B. et al., Co-packaged optics for high-performance computing and artificial intelligence, 9권 853~867쪽 (2026-08-19) — 이 글의 중심 논문
- [SK hynix Newsroom] AI 전장은 칩에서 시스템으로 — 네이처 일렉트로닉스 논문 소개 (2026-08-20)
- [SK hynix Newsroom] SK hynix’s technology roadmap for co-packaged optics features in Nature Electronics (2026-08-20)
- [StorageReview] 100Tb/s Nodes, Sub-1pJ/bit, Under 10ns — 논문 목표값 해설 (2026-08)
- [디일렉] SK하이닉스, CPO 청사진 공개 — 메모리도 빛으로 연결 (2026-08)
- [디일렉] 엔비디아가 쏘아 올린 CPO — 국내 소부장도 수주 러시 (국내 공급망 근거)
- [TrendForce] Silicon Photonics Race — TSMC 2026 COUPE, Samsung 2029 CPO 턴키 (파운드리 일정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