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에서 SPF와 PA가 어떤 시험에서 나온 숫자인지 봤습니다. 이번엔 그 숫자를 만들어 내는 성분 차례예요.

선크림 (1) — SPF 와 PA 숫자는 어떻게 정해지나

같은 브랜드의 같은 제품인데 한국판과 미국판의 성분표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제조사가 대충 만든 게 아니라 나라마다 쓸 수 있는 성분 목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필터가 자외선을 처리하는 두 방식 필터가 자외선을 처리하는 두 방식 — 출처: agy 생성

필터는 크게 두 갈래입니다

자외선차단 성분을 흔히 무기자차유기자차로 부릅니다. 정확한 이름은 무기 필터와 유기 필터예요.

갈래 대표 성분 주로 하는 일
무기 필터 징크옥사이드 · 티타늄디옥사이드 자외선을 튕기고 흩뜨린다
유기 필터 아보벤존 · 옥토크릴렌 등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바꾼다

다만 이 구분이 칼같이 갈리지는 않습니다. 무기 필터도 입자를 나노 크기로 줄이면 산란보다 흡수의 비중이 커지거든요. 백탁이 줄어드는 대신 작동 방식이 유기 필터 쪽에 가까워집니다.

  • 그래서 “무기는 물리적으로 막고 유기는 화학적으로 흡수한다”는 설명은 편의상의 구분입니다. 실제로는 두 방식이 섞여 있어요.

한 제품에 여러 개를 섞는 이유

성분표를 보면 자외선차단 성분이 서너 개씩 들어 있습니다. 하나로는 파장을 다 못 덮기 때문이에요.

필터마다 감당하는 파장 구간 필터마다 감당하는 파장 구간 — 출처: 직접 작성 (공개 문헌의 흡수 범위 요약)

자외선B는 290~320nm, 자외선A는 320~400nm입니다. 그런데 티타늄디옥사이드는 대체로 360nm 아래에서 힘을 쓰고, 아보벤존은 자외선A 쪽에 몰려 있어요. 징크옥사이드가 그중 넓은 편이지만 그것만으로 SPF를 높이려면 함량이 많이 들어가고 백탁이 심해집니다.

  • 결국 자외선B를 맡을 성분과 자외선A를 맡을 성분을 함께 넣어 구간을 잇습니다. 1탄에서 SPF와 PA를 따로 봐야 한다고 한 이유가 성분 단계에서는 이렇게 나타나요.

여기에 광안정성 문제가 붙습니다. 아보벤존은 자외선을 받으면 스스로 분해되는 성질이 있어서, 이를 붙잡아 주는 다른 필터와 함께 배합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성분표의 여러 이름은 욕심이 아니라 구간을 잇기 위한 조합입니다.

나라마다 목록이 다릅니다

여기가 이 편의 핵심이에요. 쓸 수 있는 자외선차단 성분의 수부터 다릅니다.

나라별 허용 자외선차단 성분 수 나라별 허용 자외선차단 성분 수 — 출처: 직접 작성 (각국 규정 기준)

미국이 유독 적은 이유는 제품을 무엇으로 분류하느냐에 있습니다.

지역 분류 새 성분이 들어오려면
한국 기능성화장품 식약처 심사·고시 반영
유럽연합 화장품 부속서 개정
미국 일반의약품(OTC) 의약품 수준의 자료 요구

한국과 유럽은 화장품으로 다루니 심사를 거쳐 목록에 새 성분을 넣을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자외선차단제를 일반의약품으로 관리해 왔어요. 문턱이 높은 만큼 목록이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 미국에서 한국 선크림을 그대로 팔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국내 제품에 흔히 쓰이는 신형 필터가 미국 목록에 없으면, 같은 이름의 제품이라도 미국판은 성분을 바꿔야 하거든요.

20여 년 만에 목록이 움직였습니다

2026년에 이 구도가 조금 흔들렸습니다.

성분 목록이 움직인 시점 성분 목록이 움직인 시점 — 출처: 직접 작성 (식약처·FDA 발표 기반)

6월, 미국 FDA가 베모트리지놀(bemotrizinol) 을 자외선차단 유효성분 목록에 추가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미국 OTC 목록에 들어간 첫 신규 성분이에요. FDA는 자외선A와 B를 모두 차단하면서 피부를 통한 흡수율이 낮다고 설명했고, 8월부터 미국 판매 길이 열렸습니다.

이 성분은 유럽과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써 온 필터입니다. 그래서 국내 업계에서는 K-선케어의 미국 진출 관점에서 이 승인을 반겼어요.

국내 목록도 계속 움직입니다. 2025년에 트리스-바이페닐 트라이아진이 지정됐고, 2026년에는 페닐렌 비스-디페닐트리아진이 추가되면서 자외선차단 목적으로 쓸 수 있는 성분이 32종이 됐습니다.

반대 방향의 조정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벤조페논-3(옥시벤존)에 대해 9월 2일부터 전신에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주의사항 표기가 시행됩니다. 목록에 넣는 일과 조건을 다는 일이 함께 굴러가는 셈이에요.

  • 성분표에서 낯선 이름을 봤을 때 겁부터 낼 일은 아닙니다. 국내 유통 제품이라면 그 이름은 식약처가 목록에 올린 성분이고, 사용 한도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성분표가 나라마다 다른 건 안전의 차이가 아니라 제도의 차이입니다.

1탄을 아직 안 보셨다면 숫자 편부터 보시면 이어집니다.

선크림 (1) — SPF 와 PA 숫자는 어떻게 정해지나

3탄에서는 바르는 법을 봅니다. 시험에서 쓰는 도포량과 실제로 바르는 양의 격차, 재도포 주기, 내수성 표시의 근거 — 그리고 마지막에 어떤 제품을 고르면 되는지까지 정리합니다.

참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