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에서 본 병목은 결국 시간 문제였습니다. 전기가 모자란 게 아니라, 계통에 꽂는 데 5년이 걸리고 가스터빈은 2030년까지 예약이 차 있다는 것.
그래서 나온 답이 발전기를 데이터센터 옆으로 가져오는 것이고, 그 후보로 가장 자주 불리는 이름이 SMR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뉴스에서 “꿈의 원자로” 같은 수식어와 함께 뭉뚱그려 쓰여서, 정작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안 나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것만 봅니다 — SMR이 기존 원전과 정확히 무엇이 다르고, 네 갈래로 갈리는 설계가 각각 무엇을 노리는지.
정의부터 — 얼마나 작아야 SMR인가
원자로 한 기당 전기 출력 비교 (로그 눈금) — 출처: 각 설계사 공개 사양 기반 자가 렌더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정의는 간단합니다. 모듈 하나가 내는 전기 출력이 300MWe 이하이고,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으로 옮겨 조립하는 원자로.
숫자로 보면 차이가 확 벌어집니다. 국내 최신 대형 원전인 APR1400은 1,400MWe인데, NuScale의 모듈 하나는 77MWe입니다. 18분의 1이에요. 마이크로 원자로로 분류되는 Westinghouse eVinci는 5MWe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SMR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크기로 묶은 분류입니다. 이 안에 물로 식히는 것도, 헬륨으로 식히는 것도, 녹인 소금으로 식히는 것도 다 들어 있어요.
얼마나 다양하냐면, IAEA가 2024년 카탈로그에 정리한 설계만 83종입니다. 학계 집계로는 ARIS 등록분에 미등록 설계를 더해 141종까지 셉니다.
IAEA SMR 카탈로그의 수냉식 설계 목록 — 한국의 i-SMR과 SMART가 포함돼 있다 — 출처: IAEA ARIS
위 목록에서 한국 설계 두 개가 보입니다. i-SMR(170MWe, 한수원·한국원자력연구원)과 SMART(107MWe, 한국원자력연구원·사우디 K.A.CARE)예요. 다만 이 카탈로그는 2024년판이라 i-SMR의 상태가 개념설계로 적혀 있는데, 지금은 그보다 앞서 있습니다. 최신 상황은 뒤에서 따로 정리합니다.
기존 원전과 무엇이 다른가 — 세 가지
공장에서 모듈을 만들어 트레일러로 부지에 옮기는 방식 — 출처: agy 생성
① 크기 — 작게 만들어 여러 개 붙인다
대형 원전은 한 기가 1GW 안팎을 냅니다. 이건 전력망 전체를 먹여 살릴 때는 효율적이지만, 120MW짜리 데이터센터 하나를 위해서는 지나치게 큽니다.
SMR은 반대로 갑니다. 작은 모듈을 필요한 만큼 붙여요. NuScale 설계는 모듈 1기(77MWe)에서 최대 6기(462MWe)까지 같은 부지에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수요가 자라는 만큼 나중에 더 붙이는 구조입니다.
② 만드는 방식 — 현장 건설에서 공장 제작으로
대형 원전은 부지에서 콘크리트를 붓고 배관을 잇는 건설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현장마다 공정이 달라지고, 지연이 나면 통째로 밀립니다.
SMR의 핵심 주장은 이걸 제조업으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를 하나로 합친 모듈을 공장에서 찍어 트레일러나 바지선으로 부지에 옮기고, 현장에서는 앉히고 배선만 합니다. 같은 물건을 반복 생산하면 숙련도가 쌓이고 품질 편차가 줄어든다는, 자동차·항공기에서 검증된 논리를 원자로에 적용하는 셈이에요.
③ 식히는 방식 — 능동에서 피동으로
이게 기술적으로 가장 큰 변화입니다. 원자로는 멈춘 뒤에도 붕괴열이 계속 나와서, 이걸 못 빼면 노심이 손상됩니다.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일이 정확히 이거예요 — 지진과 해일로 전원이 끊겨 냉각 펌프가 멈춘 것.
대형 원전은 펌프와 비상 디젤 발전기로 물을 돌립니다(능동 안전). SMR 상당수는 여기서 전기를 아예 빼버립니다. 원자로를 물탱크 안에 담가 두고, 뜨거워진 물이 위로 올라가고 식은 물이 내려오는 자연 순환과 중력만으로 열을 뺍니다(피동 안전).
전원 없이 자연 대류와 중력만으로 붕괴열을 빼내는 피동 냉각 개념 — 출처: agy 생성
기술 리뷰 논문은 NuScale 설계에 대해 이렇게 적습니다 — 설계기준사고에서 운전원 개입 없이 최소 72시간 동안 붕괴열과 잔열 제거를 유지한다고요. 72시간은 미국 규제가 요구하는 기준선이고, 회사는 전원과 추가 급수 없이 그 이상도 유지된다고 설명합니다.
NuScale 모듈 사양 — 열출력 250MWt, 전기출력 77MWe, 6모듈 462MWe — 출처: arXiv:2504.02599
작아진 것이 안전 설계를 쉽게 만든 면도 있습니다. 노심이 작으면 붕괴열의 절대량도 작아서, 펌프 없이 자연 대류만으로 뺄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옵니다. 크기를 줄인 게 단순히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 논리 자체를 바꾼 셈이에요.
냉각재가 갈라놓는 네 갈래
냉각재별 원자로 출구 온도 비교 — 출처: 각 설계 공개 사양 기반 자가 렌더
SMR을 실제로 구분하는 기준은 크기가 아니라 무엇으로 식히느냐입니다. 냉각재가 정해지면 온도가 정해지고, 온도가 정해지면 그 원자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정해집니다.
| 유형 | 냉각재 | 출구 온도 | 연료 | 대표 설계 |
|---|---|---|---|---|
| 경수형 | 물 | 약 300℃ | UO₂ (5% 미만) | NuScale, BWRX-300, i-SMR, ACP100 |
| 소듐냉각 고속로 | 액체 소듐 | 약 500℃ | 금속 연료 (HALEU) | Natrium |
| 용융염 | 불소 용융염 | 약 650℃ | TRISO + 염 | KP-FHR |
| 고온가스 | 헬륨 | 약 750℃ | TRISO (HALEU) | Xe-100 |
경수형 — 검증된 길
지금 세계에서 돌아가는 원전 대부분이 물로 식히는 방식입니다. 규제 기관도, 부품 공급망도, 운전 경험도 다 여기에 쌓여 있어요. 실제로 먼저 지어지는 SMR은 거의 전부 경수형입니다. BWRX-300, NuScale, ACP100, i-SMR이 전부 이쪽이에요.
대신 물은 끓기 때문에 온도를 높이기 어렵습니다. 300℃ 안팎이면 전기 생산과 지역난방에는 충분하지만, 고온 공정열이 필요한 산업에는 못 씁니다.
고온가스로 — 열을 파는 원자로
헬륨으로 식히면 750℃까지 올라갑니다. X-energy의 Xe-100(열출력 200MWt, 전기 82.5MWe)이 대표적인데, 이 열로 565℃·16.5MPa의 고품위 증기를 뽑아 화학 공장에 팔거나 수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연료도 다릅니다. TRISO는 우라늄 알갱이를 탄소·탄화규소 층으로 여러 겹 감싼 구슬 모양 연료인데, 껍질 자체가 방사성 물질을 가두는 그릇 역할을 해서 고온에서도 잘 견딥니다.
용융염·소듐 — 압력을 낮추는 길
물은 300℃로 올리려면 150기압 가까이 눌러야 합니다. 그래서 두꺼운 압력용기와 격납건물이 필요해요. 녹인 소금이나 액체 소듐은 상압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고온이 되므로 그 부담이 줄어듭니다.
대신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소듐은 물·공기와 격렬하게 반응하고, 용융염은 배관을 부식시킵니다. 규제 기관 입장에서도 참고할 운전 실적이 거의 없는 노형이라 심사가 오래 걸립니다.
연료가 병목이 된다
일반 경수로 연료와 HALEU의 농축도 구간 — 출처: World Nuclear Association 기준 자가 렌더
경수형이 아닌 설계들은 대부분 HALEU를 씁니다. 우라늄-235 농도를 5~20%로 높인 연료로, 일반 경수로 연료(5% 미만)보다 진합니다. 작은 노심에서 충분한 출력을 오래 내려면 농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이걸 만들 곳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 미국에서 HALEU를 실제로 생산하는 곳은 오하이오 파이크턴의 Centrus 한 곳뿐입니다
- 2026년 1월 기준 DOE(미국 에너지부)에 납품한 누적량이 900kg입니다. 원자로 한 기의 초기 장전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에요
- 그래서 DOE는 27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 이상을 농축 설비 확충에 걸었고, 2026년 6월 30일 Centrus와 9억 달러(약 1조 2,600억 원) 규모 상업 생산 계약을 맺었습니다
원자로 설계가 아무리 준비돼도, 연료가 없으면 그 원자로는 켜지지 않습니다.
경수형 SMR이 먼저 지어지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기존 연료를 그대로 쓸 수 있으니까요. NuScale 모듈의 농축도는 4.95% 미만으로, 지금 돌아가는 원전과 같은 구간입니다.
그럼 지금 어디까지 왔나
이번 편은 원리를 다루는 자리라 프로젝트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미루지만, 좌표만 찍어 두겠습니다.
| 설계 | 출력 | 현재 위치 |
|---|---|---|
| 링룽1호 (ACP100) | 125MWe | 하이난에 건설, 2026년 상반기 상업운전 목표 |
| BWRX-300 | 300MWe | 캐나다 다링턴 착공(2025-05), 2030년 가동 목표 |
| NuScale US460 | 77MWe×모듈 | 미국 NRC 표준설계승인 취득(2025-05) |
| i-SMR | 170MWe×4 | 원안위에 표준설계인가 신청(2026-02-27), 2028년 인가 목표 |
즉 세계 최초의 육상 상업용 SMR은 중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i-SMR의 상용화 목표는 2035~2036년이고요.
작다는 것의 대가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작으면 좋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
원자로는 출력이 부피에 비례해 늘지만, 비용은 표면적과 부품 개수에 더 가깝게 붙습니다. 그래서 크게 지을수록 kW당 단가가 내려가요 — 원전이 자꾸 커져 온 이유가 이겁니다. 작게 만들면 이 규모의 경제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입니다.
SMR의 반박은 “잃어버린 규모의 경제를 대량생산의 학습효과로 되찾겠다”입니다. 같은 모듈을 수십 개 찍으면 단가가 내려가고, 공기가 짧아 금융비용이 줄고, 한 번에 큰돈을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론은 맞습니다. 다만 그건 수십 번째 물건의 이야기이고, 지금 지어지는 건 전부 첫 번째 물건입니다. 업계 스스로도 첫 호기(FOAK) 비용을 성숙기(NOAK)의 2~3배로 잡습니다.
그 격차가 실제로 어떻게 벌어졌고 어디서 프로젝트가 엎어졌는지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숫자로 봅니다. 다음 편에서는 먼저, 그럼에도 빅테크가 왜 원자로를 계약하고 있는지 —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가 서명한 물건들을 하나씩 보겠습니다.
참고 출처
- [IAEA] Advances in Small Modular Reactor Technology Developments 2024 (설계 83종 카탈로그 · 본문 이미지 1점 출처)
- [arXiv:2504.02599] Technical Overview of Recent Developments in Small Modular Reactors in the United States (설계별 사양·피동 안전 72시간 · 본문 이미지 1점 출처)
- [IAEA] What are Small Modular Reactors (SMRs)? (300MWe 정의)
- [World Nuclear Association] High-Assay Low-Enriched Uranium (HALEU) (농축도 구간)
- [U.S. DOE] Centrus Reaches 900 Kilogram Mark for HALEU Production
- [OPG] Darlington SMR 프로젝트 현황 (BWRX-300 착공·가동 목표)
- [World Nuclear News] Chinese SMR completes non-nuclear steam start up test (링룽1호 진행 상황)
-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 i-SMR 사업 개요 (표준설계인가 신청·목표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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