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이야기는 대개 두뇌 쪽으로 갑니다. 어떤 모델을 쓰는지, 얼마나 학습했는지요.

그런데 로봇이 비싼 이유는 두뇌가 아닙니다. 관절이에요. 그리고 관절 값을 정하는 건 모터가 아니라 그 옆에 붙은 감속기입니다.

관절 안을 들여다본 단면 관절 안을 들여다본 단면 — 출처: agy 생성

관절이 몇 개나 들어가나

사람 팔을 흉내 내려면 관절이 여럿 필요합니다. 어깨에서 손목까지 꺾이는 방향마다 하나씩이에요.

관절 하나에 액추에이터 하나 관절 하나에 액추에이터 하나 — 출처: 직접 작성 (보도 수치 기반)

현대차 로보틱스랩이 개발 중인 이동형 양팔 로봇을 보면 감이 옵니다. 팔 하나에 액추에이터(actuator, 구동장치) 7개를 넣어 7자유도(DoF, Degrees of Freedom)를 만들고, 손·팔·목·어깨·허리를 합친 상반신 전체에 약 40개가 들어갑니다.

  • 여기서 자유도는 “몇 방향으로 꺾이는가”입니다. 사람 팔이 어깨에서 3방향, 팔꿈치에서 1방향, 손목에서 3방향 움직이는 것과 같은 셈이에요.

액추에이터 하나는 단순한 모터가 아닙니다. 모터 + 감속기 + 엔코더 + 드라이버가 한 덩어리로 묶인 구동 단위예요. 관절 40개면 이 덩어리가 40개 들어갑니다.

그 관절이 원가를 정합니다

원가에서 관절이 차지하는 몫 원가에서 관절이 차지하는 몫 — 출처: 직접 작성 (업계 추정치 보도 기반)

국내 로봇 부품 업계에서는 감속기를 포함한 액추에이터가 휴머노이드 제조원가의 60% 안팎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카메라도 배터리도 제어 컴퓨터도 아니고, 관절이 절반을 훌쩍 넘깁니다.

부위 들어가는 것
관절 하나 모터 · 감속기 · 엔코더 · 드라이버
상반신 이 묶음이 약 40개
  • 그래서 휴머노이드 가격을 낮추려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이 40개를 얼마에 만드느냐를 풀어야 합니다.

로봇 값을 정하는 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관절 개수 곱하기 감속기 단가입니다.

감속기는 무엇이고 왜 갈리나

감속기가 하는 일

모터는 빠르게 돌지만 힘이 약합니다. 반대로 로봇 관절은 느리고 힘세게 움직여야 해요. 그 변환이 감속기가 하는 일입니다.

회전 속도를 줄이는 만큼 토크(회전력)가 커집니다.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항목 모터 쪽 100:1 감속기를 지나면
회전 속도 3,000rpm 30rpm
토크 1 약 100배 (손실 제외)

로봇 팔이 1초에 반 바퀴쯤 도는 속도라면 30rpm 언저리입니다. 모터를 그 속도로 직접 돌리면 힘이 안 나오고, 그래서 빠르게 돌린 뒤 감속기로 바꿔 주는 거예요.

여기서 로봇이 까다로운 이유가 나옵니다. 백래시(backlash) — 기어 이 사이의 미세한 헐거움입니다. 방향을 바꿀 때 그만큼 헛돌아요. 산업용 컨베이어라면 무시할 수준이지만, 손끝으로 물건을 집는 로봇에서는 이 헐거움이 그대로 오차가 됩니다.

  • 정밀 감속기가 비싼 건 속도를 줄이면서 동시에 헐거움을 없애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가 반사 관성입니다. 감속비가 크면 모터 쪽의 관성이 관절에서 훨씬 무겁게 느껴져요. 사람이 로봇 팔을 손으로 밀었을 때 뻑뻑하게 버티는 이유가 이겁니다. 힘을 정밀하게 조절하거나 사람과 부딪혀도 안전해야 하는 로봇에서는 이 성질이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하모닉이냐 사이클로이드냐

로봇용 정밀 감속기는 크게 둘로 갈립니다.

하모닉 드라이브는 부품 세 개로 돌아갑니다. 타원형 웨이브 제너레이터가 얇고 유연한 컵 모양의 플렉스플라인을 안에서 밀어 타원으로 변형시키고, 그 바깥의 고정 링인 서큘러 스플라인과 맞물립니다. 두 부품의 이 개수가 조금 달라서, 한 바퀴 돌 때마다 그 차이만큼만 천천히 밀려 나가요. 그게 감속입니다.

이가 항상 여러 개 맞물려 있어 백래시가 사실상 0입니다. 대신 금속을 계속 휘었다 펴며 쓰는 구조라 효율이 낮고, 부품 수가 적어 작고 가볍습니다.

사이클로이드(RV) 는 편심(중심이 어긋난) 디스크가 핀들 사이를 굴러 도는 구조예요. 여러 이가 동시에 하중을 나눠 받아 충격에 강하고 수명이 깁니다. 감속비는 대체로 57:1에서 192:1 사이를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두 감속기의 효율 두 감속기의 효율 — 출처: 직접 작성 (제조사 공개 사양 요약)

효율에서 갈립니다. 하모닉은 65~80%, 사이클로이드는 85~92% 수준이에요. 배터리로 도는 로봇에서 이 차이는 그대로 가동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한 로봇 안에서도 자리마다 다른 걸 씁니다.

부위 쓰는 감속기
손목처럼 미세한 움직임 하모닉
허리처럼 하중이 큰 곳 사이클로이드
큰 힘이 필요한 구동부 유성 기어
단순 구동부 스퍼 기어
  • 즉 “휴머노이드용 감속기”라는 단일 부품은 없습니다. 부위마다 요구가 달라 네 종류가 한 몸에 섞여 들어갑니다.

감속기를 덜 쓰는 길도 있습니다

감속기가 비싸고 무겁고 뻑뻑하다면, 덜 쓰면 되지 않을까. 그 발상이 QDD(Quasi-Direct Drive, 준직접구동) 입니다.

전통적인 기어드 모터가 50:1에서 300:1을 쓰는 자리에, QDD 는 2:1에서 15:1 정도의 낮은 감속비만 씁니다. 대신 토크가 센 큰 모터를 쓰죠.

  전통 기어 방식 QDD
감속비 50~300:1 2~15:1
반사 관성 크다 작다
역구동(밀면 돌아감) 어렵다 쉽다
최대 토크·유지력 유리 불리
  • 그래서 QDD 는 뛰고 부딪히는 로봇(사족보행·다리 관절)에 강하고, 무거운 걸 들고 오래 버텨야 하는 자리에는 불리합니다.

즉 하모닉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리를 나눠 갖는 선택지예요. 휴머노이드 한 대에 정밀 감속기와 QDD 가 함께 들어가는 그림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일본이 쥐고 있던 자리

이 시장은 오랫동안 일본 몫이었습니다. 하모닉 기어를 처음 만든 일본 하모닉드라이브가 점유율 70~80%로 사실상 독점해 왔고, 사이클로이드 쪽은 나브테스코가 강했어요.

국산 부품이 채워 가는 자리 국산 부품이 채워 가는 자리 — 출처: agy 생성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특허 만료입니다. 관련 특허가 풀리면서 한국과 중국 업체가 같은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국내에서는 에스비비테크가 하모닉 감속기를 처음 국산화해 일본 제품보다 약 30% 싸게 공급하고 있고, 삼성전자의 정밀 감속기 테스트 파트너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에스피지도 로봇용 감속기를 만듭니다.

현대차 로보틱스랩은 시제품에 하모닉드라이브·나브테스코(일본)와 에스비비테크·에스피지(한국)를 섞어 붙여 보고 있고, 최종 양산품에서는 국산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걸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나라 현재 위치
일본 원조·점유율 우위
중국 클러스터로 원스톱 양산
한국 국산화 진입, 검증 단계

중국 쪽은 속도가 다릅니다. 선전·둥관·쑤저우 일대에 액추에이터 부품을 즉시 양산해 주는 업체들이 모여 있고, 테슬라도 옵티머스 개발에 중국 로봇 손·액추에이터 업체 여럿과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휴머노이드 경쟁이 모델 성능에서 부품 공급망으로 옮겨 가는 국면이고, 국내 업체들이 지금 검증받고 있는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로봇이 공장에 들어가는 속도는 학습 데이터가 아니라 관절 단가가 정합니다.

참고 출처